책: 여행의 이유(김영하 산문)

소설가 김영하의 여행, 그리고 여행을 바라보는 아홉 가지 이야기.

1장 추방과 멀미

첫 번째 이야기는 2005년 당시, 작가가 집필을 위해 중국으로 떠났지만 입국을 거부당하고 추방당했던 일화로 시작합니다. 매우 불운한 일로 생각할 수 있지만 이러한 흔치 않은 경험이 결국 좋은 이야기 소재가 되었다고 말하면서 ‘여행의 의미가 무엇인가?”라는 본질적인 질문으로 이어집니다. 그는 여행이란 “여행을 떠난 주인공이 여러 시련을 겪다가 원래 성취하고자 했던 것과 다른 어떤 것을 얻고 오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여러가지 이야기로 예시를 보여주는데, 여행을 떠난 많은 이들이 여행을 마쳤을 때 본인이 원하던 외면적 목적 달성 여부와 관계없이 평소에 인식하지 못 했던 내면적 목표를 달성하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그러나 한편, 여행의 어원이 travail(고역)에서 유래된 점을 보면 20세기 이전의 사람들은 여행이란 고향에서 머물지 못 하고 타지를 떠돌아 다니는 고통스럽고 힘든 시련이라고 여겼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즉, 현재 우리는 지루한 일상을 떠나 새로운 것을 얻고 싶은 마음과 안정적이고 통제된 삶에서 위험한 변수를 피하고 싶은 마음이 서로 상존하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2장 상처를 몽땅 흡수한 물건들로부터 달아나기

작가는 서두에 “나는 호텔이 좋다.”라고 말하면서 운을 뗍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호텔에 머무는 동안에는 일상과 가족, 인간관계로부터 받는 상처와 피로로부터 벗어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삶이 부과하는 문제가 크면 클수록 작가는 여행을 더욱 갈망하였다고 합니다. 필자도 일상에서 주어지는 문제에 도피하고 싶을 때 소설이나 영화 속 이야기를 상상하곤 하는데 아마도 비슷한 감정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3장 오직 현재

사람들은 대개 과거를 후회하고 다가올 미래에 대해 불안감을 느끼며 살아갑니다. 여행은 그런 우리를 과거와 미래로부터 끌어내 현재에 집중하게 만든다고 합니다. 그 경험들 중 의미있는 것들을 생각으로 바꿔 저장하고 이로부터 영감을 얻습니다. 그래서 작가는 언제나 그 순간에 있었던 여행지보다는 집에 누워있을 때 영감을 얻는다고 합니다.

4장 여행하는 인간, 호모 비아토르

철학자 가브리엘 마르셀은 인류를 호모 비아토르(여행하는 인간)으로 정의하기도 했는데 인간은 끝없이 이동해왔고 그런 본능이 우리 몸에 새겨져 있다고 합니다. 1995년 전에는 전 세계적으로 여행 인구가 5억 2천만 명이었으나 인터넷 시대가 도래하면서 2016년에는 12억 4천만 명으로 두 배가 넘게 증가하였습니다. 여행은 피곤하고 위험하면서 비용도 많이 들지만 인류의 본능이 여행을 포기하지 않고 기술이 발전하면 할수록 더 많이 이동하는 것을 통계가 보여주고 있습니다. 어쩌면 인류가 여행이 선택이 아닌 필수라고 생각하는 날이 올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5장 알아두면 쓸데없는 신비한 여행

다섯 번째 이야기는 “알아두면 쓸데없는 신비한 잡학사전”에 출연한 김영하 작가가 독특한 화법으로 방송 경험을 풀어내는데 특히 프로그램 편집에 대해 바라보는 관점이 놀라웠습니다. 출연자들이 뿔뿔히 흩어져 각자의 여행을 다니고 저녁 식사 때 모여 본인들이 겪은 여행 이야기를 들려주는 방식인데, 편집하는 제작진들도 모든 여행을 리뷰할 수 없어 최종 영상을 통해 간접적으로 경험하게 된다고 합니다. 작가도 최종 편집본을 통해 간접적으로 다른 여행들을 체험하게 되는데 심지어 본인이 직접 다녀온 여행지조차 편집하는 사람의 느낌과 색깔에 영향을 받아 좀 더 깊이 있고 색다른 여행을 경험한다고 합니다. 즉, 최종 영상은 타인이 보여주고 싶은 여행의 정수만 골라서 체험할 수 있으면서 본인은 여행 과정에 수반되는 고통과 비용을 지불하지 않아도 됩니다. 이를 “방구석 여행자”라고 표현했는데 모두가 어느정도는 방구석 여행자이며 일인칭 시점으로 수행한 이 ‘진짜’ 여행은 다른 사람들의 경험과 생각이 함께 숙성되면서 우리의 여행이 좀 더 명료해진다고 합니다.

6장 그림자를 판 사나이

아델베르트 폰 샤미소의 “그림자를 판 사나이” 소설을 보면 주인공은 자신의 그림자를 신비한 인물(악마)한테 파는 대가로 무엇이든 꺼낼 수 있는 ‘행운의 자루’를 얻게 됩니다. 그림자라는 평소에는 신경도 쓰지 않는 것을 파는 대신 엄청난 부를 얻었지만 주인공은 곧 그림자가 인간에게 매우 중요하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그림자가 없는 인간은 사회에 환대받지 못 하였고 결국 혼자가 되었지만, 우연히 어디든지 갈 수 있는 마법의 장화를 얻게 되면서 여행자로 살아가게 됩니다. 즉, 현실에서 여행자는 그림자가 없는 존재이기 때문에 타지에서 어떤 의무와 책임도 또한 어떤 소속감도 가지지 않습니다.

7장 아폴로 8호에서 보내온 사진

일곱 번째 이야기는 여섯 번째 이야기의 반전을 담아냈는데, 여행을 통해 얻는 또다른 기쁨은 타지에서 경험하는 환대라고 합니다. 지구라는 작은 행성에 같이 탑승하고 있는 승객으로서 모두가 동료이고 소중한 존재라는 관점에서 보면 곤란한 여행자를 도와주는 것은 선순환을 유발합니다. 인류는 오랜 세월동안 서로를 적대하고 살육해왔지만 한편으로 낯선 이들을 손님으로 맞이하고 절실한 것들을 제공하면서 떠나보내기도 하였습니다. 거의 모든 문명에, 특히 유목민들에게는 손님을 잘 대접하라는 계율이 남아있다고 합니다.

8장 노바디의 여행

실뱅 테송은 “여행의 기쁨”에서 괴테를 인용하는데 ‘여행은 여행자가 외부 세계에 감행하는 습격이며 , 여행자는 언젠가 노획물을 잔뜩 짊어지고 집으로 돌아가는 약탈자다’라고 언급합니다. 반면에 식사와 잠자리를 제공하면 고마워하며 소식이나 정보 및 선물 등을 주고 떠나는 이들도 있으므로 외부인은 위험하면서도 동시에 매력적이라고 표현합니다. 성숙한 여행자라면 자신을 타지의 상황에 따라 “섬바디(특별한 사람)” 혹은 “노바디(현지인 코스프레)” 중 하나를 선택해서 현명하게 대처하게 되는데 이는 인생을 지혜롭게 살아가는 방법이기도 합니다.

9장 여행으로 돌아가다

일상과 여행의 관계는 마치 현실과 소설의 관계와 같다고 합니다. 현실은 어지럽고 복잡하고 무질서합니다. 그러나 소설은 현실과 비슷한 일이 일어나지만 질서가 있고 통제가 가능합니다. 여행은 우리를 집중시키고 한 도시의 정수만을 맛보길 원하며 여행에서 보고 듣는 모든 것들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여행은 시작과 끝이 분명하다는 점에서 소설과 닮았으며 설렘과 흥분 속에서 낯선 세계를 탐험하고 안전하게 출발점에 돌아옵니다. 작가는 자신의 정체성을 여행자로 규정할 수 밖에 없는 최종적인 이유가 여기서 두드러지는데 지루한 일상을 벗어나 세상을 다시 느끼고 정신이 한껏 고양된 상태로 돌아오면서 다시 일상을 여행할 수 있는 힘을 얻는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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